

2000s

“ 오 캡틴! 마이 캡틴… 오, 책상에 오르라는 소리는 아니였습니다. ”

![[시몬상클레어-전신].png](https://static.wixstatic.com/media/65abe3_b776696182294b448fcf41ed9a25fd8d~mv2.png/v1/fill/w_828,h_1035,al_c,q_90,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5B%EC%8B%9C%EB%AA%AC%EC%83%81%ED%81%B4%EB%A0%88%EC%96%B4-%EC%A0%84%EC%8B%A0%5D.png)


시몬 상클레어
35 / 405세 | M | 고등학교 철학 교사
189cm / 89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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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있는/사교적인/긍정적인
돌고 돌아 결국 다시 교직생활로 돌아온 시몬은 200년 전에도, 150년 전에도 그래 왔듯이 친절하고 강의력이 좋으면서도 억양이 특이한 교사의 역할로 돌아오게 되었다. 바칼로레아을 치르고 대학, 혹은 그랑제콜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만족스러운 철학 점수를 가져다 주는 것의 그의 일이였으나 그는 학생들에게 철학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그들이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는 그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교사로 일한 지 어연 10년이 넘어가는 현재 그는 종종 성인이 된 그의 학생들에게 인삿말과 간단한 근황이 담긴 문자나 메일을 받곤 했고 그는 이런 소소한 연락을 받는 것을 무척 보람찬 일로 여겼다.
늘 어떠한 집단에 속하거나 다수의 필멸자와 유대감을 형성하며 사는 것을 선호해 온 시몬은 여전히 주변에 대화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동안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어느 정도 홀로 서기를 시도하는 듯 했으나 안정적인 직업과 생활로 돌아온 시몬은 어느 순간 불멸자 중에서 수상하게 발이 넓은 존재로 돌아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알던 옛 풍경들은 사라져 갔고 사람들의 생활 양식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은 조금 낯설지언정 제법 살 만한 곳이였다. 그런 고로 시몬은 여전히, 조금 짜증스러울 정도로 여유롭고 긍정적인 태도로 제법 살 만한 세상에서 만족스럽게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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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 - 사진 작가로 활동하면서 신분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으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1960~1977 -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다리 한 짝을 성공적으로 재부착한 시몬은 두 다리로 걷는 일에 다시 익숙해지자 그동안 지인들에게 추천받았던 여행지를 하나씩 차근차근 다녀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인도에 머무는가 하면, 옛 무역로를 따라 중앙아시아를 건너기도 하고, 바다 건너 호주에 얼마간 체류하기도 하고… 평범한 관광객마냥 사진기를 끼고 새로운 곳을 탐방하는 일은 생각보다도 즐거운 일이였고, 시간은 금방 갔다. ‘또 다른 A’와 같은 사람은 끝내 찾지 못했다.
1977 - 자신의 고향 프랑스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A의 무덤도 찾아갔다.
1978 - 복자 ‘시몬 상클레어’의 유해가 안치되었었던 낡은 성당을 찾아갔다. 익숙한 향이 나는 건물에 들어서자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으나 침착하게 작은 성모상 앞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렸다. 자신의 ‘성유물’이 전쟁에서 살아남았음을 확인한 시몬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갔다.
1980 - 노안의 20대 청년의 신분으로 바칼로레아를 치르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2년간 그랑제콜 준비반에 진학하기로 했다.
1982 - 순조롭게 에콜 데 샤르트에 입학한 후 5년 후에 그의 3 번째 석사 학위를 땄다.
1987 - 교원자격시험(agrégation)를 통과하여 드디어 계획했던 대로 프랑스의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1999. 6. 24 - 18세기 말에 유해가 도굴당한 복자 “시몬 상클레어”가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복되었다. 약 200년 전의 황당한 추억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마주하게 된 시몬은 신문을 보다가 셔츠에 커피를 쏟았다.
현재의 직업
교원자격시험을 통과한 아그레제(agrégé)로서 프랑스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과거를 아는 불멸자들에게야 시몬이 교원자격시험에 붙은 일은 취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필멸자들 사이에 끼어든 고학력자의 기만적인 행보로 보였겠지만 시몬은 합격자 명단에 오른 것을 무척이나 기꺼워했다. 오랜 휴식 기간 동안 잡다한 정보를 무분별하게 축적해오기만 했더니 시험을 치르고 타인에 의해 합격 여부를 고지받는 일은 시몬에게 성취감을 넘어서 순수한 쾌를 가져다 준 것이다.
파리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일하게 된 시몬은 신입 교사 치고 제법 능숙하게 교직생활에 녹아들었다. 그렇게 시몬은 13년 동안 변함 없이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평이 좋은 철학 교사로 지내왔다.
취미생활
‘인터넷’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범세계적 규모의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굉장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조금 불쾌한 웹사이트 몇 개를 마주하게 된 후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총 세 가지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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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개인 블로그. 시시콜콜한 근황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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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교육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무료로 업로드하는 교육용 아카이브. 정갈하게 정리된 정보글과 간단한 퀴즈 등을 다양한 언어로 꾸준히 업로드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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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일기장이나 다름없는 개인 웹사이트. 시몬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낸 비밀 일기장은 아니고 250년간의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기록하기 위해 만든 웹사이트다. 파편적인 기억을 의식의 흐름대로 기술하고 역사서와 논문, 사진과의 교차 검증을 통해 정확한 시대와 장소를 유추하는 식으로 글을 써내려간 탓에 레이아웃이 기묘하며 글이 몹시 무질서하게 느껴진다.
예전만큼 사진을 자주 찍지는 않지만 이따금식 그의 블로그에 구도가 무척 좋은 사진들이 올라오곤 한다.
기타
예전에 비해 몸 상태가 매우 건강해졌다.
이제는 성당을 갈 수 있게 되었지만 매주 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스스로를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생각한다.
운전 면허가 있지만, 깊이 감각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자동차를 모는 것은 위험한 행위라고 생각해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전거라고 덜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로 사람을 박는 것보다야 자전거로 사람을 박는 것이 나을 거라는 논리. 조금 모양 빠지더라도 꼭 헬멧을 쓰고 다닌다.
최근에 실제 안구와 매우 흡사한 의안을 구입했다.
여전히 일출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샌가 ‘새벽마다 조깅하는 그 남자’ 가 되었다.
